2011년 02월 21일
03.어둠에 녹아드는 별-(2)
눈을 떠보니 낯선 곳. 한치 앞도 보이지 않는 어둠. 밤이라고 단정 짓기엔 너무 끈적거리고 농도 짙은 어둠이 주변을 휘감고 있다. 어리둥절한 기분에 잠시 일어나 앉아 두리번거리다가 뒤통수를 강타하는 충격에 손을 올렸다. 뒤통수에서 묻어나는 흥건한 피, 그리고 자신의 짧고 짙은 머리카락이 아닌 길고 가는 머리칼이 손가락에 얽혀있었다.
"이게…대체 무슨 일이지? 여긴 또 어디야? 난 분명히 학교 옥상에서…"
무심코 올려다 본 하늘은 칠흑 마냥 새카맣다. 눈을 떴는지 감았는지 조차 가늠하기 어려운 어둠. 당장 눈앞의 사물을 분간하기도 어려워서 섣불리 움직이기 힘들었다.
몸을 일으키려 애쓰지만 온 몸을 자극하는 강렬한 통증. 두들겨 맞은 듯 심한 통증을 호소하는 온 몸은 저절로 식은땀이 삐져나올 정도였다. 그때, 눈앞에 내밀어진 가느다랗고 하얀 손 하나. 손을 따라 고개를 올리자 낯익은 것 같지만 본 적 없는 누군가가 서 있었다.
'어디서 본 것 같은데 도통 기억이 나지 않아. 저 사람은 누구지?'
"누구세요?"
분명 묻는 말이지만 자신이 생각하기에도 궁금해서 묻는 말투가 아닌 것 같았다. 퉁명스럽고 시큰둥한 어조. 하지만 낯선 곳에 떨어진 나름의 경계심을 담아 물었다.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어서 오세요, 이번의 '별'님."
왠지 익숙하게 들리는 저 별이라는 호칭. 비단 자신의 이름이 '별'이라서가 아닌, 어디선가 들어본 저런 식의 호칭. 게다가 눈앞의 사람은 어둠에 가려져 형체도 제대로 보이지 않는 희뿌연 무언가였다.
머리가 깨질 것 같은 아픔에 부여잡은 머리를 쓰다듬으며 몸을 일으켰다.
왠지 묘한 기시감을 느끼며 별은 퉁명스레 입을 열었다.
"자꾸 별, 별 하는데 그 별이 대체 뭘 말하는 겁니까?"
그러자 무언가의 존재는 작게 웃었다.
"하늘을 보세요. 별이 하나 보이지요? 그게 당신의 별이랍니다."
하늘을 보았다. 아주 조그맣게 반짝거리는 별 하나. 있는 지 없는 지도 사실 잘 모르겠다.
"저게 제 별이라구요? 전 그냥 보통 일반 사람인데요. 별을 가질 수 있을 리 없잖아요."
"후후, 당신이 이 세계로 온 것은 당신이 수행해야 할 사명이 있기 때문이에요. 당신은 이 세계의 어둠과 대적할 수 있는 유일한 '별' 이랍니다."
'이건 또 뭔 개 풀 뜯어먹는 소리래.'
미친 사람을 보는 것처럼 빤히 봐 줬더니 음영으로만 보이는 그 존재가 웃는 기척이 났다. 모습이 보이는 것이 아니라 기척으로 웃는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별 이란 어둠속에서도 유일하게 빛을 잃지 않는 존재지요. 그것이 이번엔 당신입니다."
"그럼 그 어둠이란 뭔데요?"
뚱하게 들리는 내 목소리에 그 존재는 잠시 기척을 죽이더니, 이내 천천히 답해 왔다.
"이 세계를 지배하는 것이요."
나는 어지러워지는 머리를 붙잡았다. 진짜 뜬구름 잡는 소리, 아니 도통 알 수 없는 소리만 해댄다.
"이 세계를 지배하는 것이며 이 세계에 존재하는 어떤 것으로도 대적할 수 없는 것이죠. 그래서 당신이 이곳에 온 겁니다. 그것도 당신이 처음이 아니랍니다. 여기 이 세계는 이방인들의 도움 없이는 지탱할 수 없는 아주 불완전한 세계거든요."
웃고 있는 무언가가 왜 일그러져 보이는지 알 수가 없다. 중요한건 난 옥상에서 떨어졌는데 지금 이러고 있다는 거다. 마음이 삐딱한 건가 싶었다.
"원래 내 세계의 나는 그럼 죽은 겁니까?"
그러자 그 존재는 고개를 저었다.
"이 차원과 그 차원은 흐름이 달라요. 하지만 그 차원에서 처해진 상황에 따라 그 다음 상황이 따라오겠죠. 모든 것은 인과 관계로 연결되어 있으니까요."
그렇다면 내가 죽었다 하더라도 이상하지 않다. 난 학교옥상에서 떨어졌으니까. 그런데 왜 마음이 평온한지 모르겠다. 죽었으면 어떻게 되는 거지?
"그렇다면 원래 내 세계에서 내가 어떻게 되었는지 알 수가 없는 겁니까?"
그건 당신이 사명을 완수하면 자연히 알게 될 거에요. 여기에서 제가 알려드릴 수 있는 방법은 없군요."
이건 또 뭐하자는 건가. 부아가 치미는데 딱히 뭐라 할 말이 없다. 일단 이리로 빠져버렸으니 이거든 저거든 해보고 얼른 돌아갈 수밖에 없겠군.
"그럼 제가 여기서 뭘 하면 되죠?"
그 존재는 잠시 뜸을 들이더니 천천히 말문을 열었다.
"별 이라는 존재는 어둠의 절기, 이 세계의 목숨이 경각에 달리면 항상 나타나게 됩니다. 어둠의 절기가 되어 어둠의 힘이 강해지면 이 곳은 빛을 잃는답니다. 그러나 별은 어둠속에서도 빛나는 존재. 어둠이 있어야만 존재하는 것이기 때문에 어둠을 제어할 수 있는 자는 별의 존재뿐입니다. 그것을 우리는 기다리고 있지요. 별의 구원자가 나타나 어둠을 잠재우고 이 세계의 혼란을 눌러주는 것을요."
"그럼 제가 그것을 해야 하는 겁니까? 무슨 수로?"
기가 막혔다. 뭘 어쩌라는 건가. 뜬금없이 무슨 구원자니 뭐니 알 수 없는 소리만 늘어놓고. 습관처럼 머리를 쓸어 올리는 데 아까 느꼈던 긴 머리카락이 손가락 끝에 휘감기는 것을 느꼈다.
" 이 머리카락은 또 어떻게 된 겁니까? 난 이렇게 머리를 기른 적이 없는데?"
불만에 찬 어조. 뭔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듯 고개를 좌우로 흔들어 치렁치렁한 머리카락을 나풀나풀 날리며 말했다.
"지금 당신의 모습은 당신이 아는 모습이 아니에요. 이 우주에는 수많은 차원이 존재하고, 당신이 살고 있는 차원처럼 생명체가 살 수 있는 행성만 수십, 수백억 개가 된답니다. 그런데 그 차원은 각각 독립된 영역을 지키고 있기 때문에 각 차원에는 당신과 동일한 인물이지만 각각 다른 삶을 사는 사람들이 셀 수 없이 존재한다는 거죠. 사실 차원을 넘어서 오는 인간은 거의 없어요. 불가능하기도 하구요. 당신과 같은 특수한 경우가 아니라면 더더욱 그렇죠. 당신은 '꿈'이라는 매개체를 통해 우주를 넘어 이쪽 차원으로 넘어온 겁니다. 더 자세히 말하자면 당신을 '꿈'이라는 형태로 당신의 잠재의식이 이 차원으로 통하도록 만든거죠. 당신을 잠재의식으로부터 부른 것은 이 곳입니다. 당신 뿐 만 아니라 어둠의 절기가 올 때마다 이 차원에선 구원자들을 불렀으니까요. 그리고 당신은 원래 이 차원에 존재하던 당신과 합쳐진 겁니다. 한 차원에 같은 인물이 둘 있을 수는 없으니 모순을 피하기 위해 그렇게 된 거죠. 당신이 지금 가지고 있는 모습은 이 차원에서의 당신의 모습일겁니다."
도통 알아들을 수 없는 얘기를 한다. 머리가 너무 아프고 저 무언가가 하는 말을 반도 못 알아들었다. 저건 무슨 망발이냐. 저 사람 혹시 미친 거 아닌가. 덜컥 겁이 난다. 어떡한담. 꿈이라면 어서 깨어라. 아니라면 빨리 도망을 쳐야하는데 온 몸은 쑤시도록 아프고 다리는 후들거려서 뛰지를 못한다.
"그러니까, 이 긴 머리도 이 치렁치렁한 옷도 다 여기에 있는 '내 모습'이라는 겁니까?"
그러자 그 존재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것 역시 기척으로 알아차렸다.
"그렇다고 할 수 있죠. 당신 차원의 당신 모습이 아니라 이 차원의 당신 모습이 맞을 겁니다. 그것이 이 차원의 생리와 환경에 적합하기 때문이겠죠."
기가 막히는데 당장 눈에 보이는 것은 이상한 모습을 하고 있는 자신. 뭐라 반박할 말이 딱히 떠오르지 않으니 쏘아붙여주고 싶어도 그럴 수가 없다. 꼼짝없이 돌아갈 때까진 이러고 있어야 하는 건가.
"그럼 전 뭘 하면 되죠? 당신들이 말했던 그 어둠의 절기에 앞선 구원자들은 어떻게 되었습니까?"
그러자 기척 없이 스르륵 움직이던 누군가가 그의 손을 잡았다. 오싹하도록 차가웠다.
"그들은 자신의 사명을 완수하고 이 세계에서 사라졌답니다. 그들은 여기 없어요."
"사라지다니요? 죽는 겁니까?"
그러자 그 누군가는 살풋 웃었다.
"죽는게 아니라 사라지는거지요. 조금 다르답니다."
'그거나 그거나!!'
빽 소리를 지르고 싶은 충동을 꼭 눌러 참았다. 바보 취급 하는건가. 아무것도 모르는 곳에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로 왔으니 지금 자신을 가지고 노는건가. 황당한 마음에 손에 잡힌 그 무언가를 당기기 위해 무의식적으로 몸을 내밀었다. 그러자 그는 살짝 몸을 뒤로 물리며 잘게 부서지는 가늘고 청아한 웃음소리를 내었다. 잠시 잡았던 손이 금세 떨어져 나갔다. 그 무게나 흔적도 없이.
"전 어둠에 몸이 익숙해져버린 존재입니다. 제가 원하지 않는다면 당신은 절 잡을 수 없답니다."
별은 앞으로 무게중심이 쏠린 몸을 다시 바로잡고 말했다.
"굳이 잡으려던 건 아니었어요. 나도 모르게 그런 거예요."
별은 앞서 걸어가기 시작한 그를 뒤따라가며 말했다.
"제 이름은 한 샛별입니다. 샛별이 뜨는 새벽에 태어났거든요."
말하고 나서 갑작스럽게 밀려오는 주체할 수 없을 정도의 낯부끄러움을 느끼고 얼굴이 확 달아올랐다.
"외모에 걸맞은 아주 사랑스러운 이름이군요, 샛별님."
왠지 평소의 냉정 침착함을 찾을 수 없이 요동치는-부끄러움 때문에-가슴을 진정시키기 위해 심호흡을 했다. 이런 기분은 또 오랜만이라고 생각하는 별이었다.
"일단 저를 따라오세요. 이곳은 어둠에 이미 잠식당해서 오래 버티기 힘들 겁니다."
그는 별을 잠시 돌아보며 말하고는 이내 소리도 없이 가벼운 걸음걸이로 앞서갔다.
무심코 올려다 본 하늘엔 칠흑 같은 어둠 속에 달보다 크고 환한 별 하나가 떠 있었다. 아깐 분명 있는지 없는지도 알 수 없었던 별 하나. 여기에 달이 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지구 식으로 비교하자면 달보다 큰 거 같다. 뭐 어쨌든 별이랑 그리 상관없는 삶을 살아왔던 관계로 그다지 감흥이 느껴지진 않는다. 단지 저 별 하나만 딱 보이니 눈에 확 띄는구나 라는 생각 뿐. 왜 저게 저렇게 갑자기 커졌을까 하는 의문도 함께.
"일단 여기서 벗어나야 합니다. 당신의 존재를 지키려는 자들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자들도 있거든요."
"그 존재들이라는 게 어둠이라는 것과 관계있는 것이겠죠?"
"네. 당신을 반기지 않는 어둠의 세력이 존재하고 있어요. 그들은 이 어둠의 절기 동안 모든 것을 지배, 감시하지요. 아마 당신이 왔다는 것을 가장 꺼리고 반기지 않을 겁니다. 오히려 당신이 이곳에 올 수 없도록 손을 쓰려고 했을 겁니다."
"그렇다면 제가 여기서 무언가를 하기도 전에 생명이 위험할 수도 있다는 겁니까?"
"네. 당신이 완전해지려면 아직 시일이 남았습니다. 그 기간 동안은 몸조심하셔야 합니다. 이 어둠의 절기는 당신이 아니면 무사히 넘길 수가 없습니다. 온전한 힘을 가지시려면 지금은 몸을 아껴야 할 겁니다."
어이없다. 뭘 하라고 불렀다면 적어도 뭘 하는지는 알려주지 않았더라도 그 전에 죽을 일은 미연에 방지해줘야 하는 거 아닌가? 일을 하라고 불렀는데 정작 그 일을 하기도 전에 죽을 수도 있다니. 이건 도저히 내가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솔직히 내 상식으로는 이해가 안 된다. 까딱하면 남 일에 나대다가 내가 먼저 자빠지는 꼴 아닌가. 죽어도 그리는 못한다. 별은 저도 모르게 이를 악 물었다.
"제가 목숨의 위협을 받는데도 이 일을 해야 하는 겁니까? 이 일을 할 수 있을지 없을지도 모르는 데도요?"
그러나 그 존재는 계속 길을 재촉하며 서둘러 얘기했다.
"당신이 여기 온 이유는 딱 하나입니다. 이 세계를 구원하기 위해서. 하지만 다른 세계의 당신이 온전하게 이 차원으로 넘어올 수는 없었겠지요. 그러니까 이곳에 완전히 적응할 수 있을 때까지 조금만 기다리면 됩니다. 여기서 조금만 가면 어둠의 세력이 침범할 수 없는 당신만의 장소가 있습니다. 속히 저를 따라 오시지요."
그때였다. 무언가가 별의 눈앞에 날아든 것은.
휘익- 퍽-.
별은 너무 놀라 눈만 껌뻑이고 있었다. 심하게 놀란 나머지 비명조차 지르지 못했다. 바로 발 앞에 박힌 것은 새까만 화살이었다. 그것도 새까만 철로 만든 듯 매우 예리하고 단단한 것이었다.
딸꾹-.
별은 저도 모르게 딸꾹질을 했다. 심장이 입 밖으로 튀어나오는 줄 알았다. 별은 자신을 강하게 끌어당기는 힘을 느끼고 버틸 여유도 없이 끌려갔다.
"이쪽으로, 어서요! 빨리빨리 움직이셔야 합니다! 그 녀석들이 지척에 와 있습니다!"
"제, 제가 여기 온 것을 그들도 알고 있나요?"
새하얗게 질린 별이 말을 더듬었다. 그러나 그 존재는 더욱 강하게 별을 잡아당기면서 급하게 말했다.
"하늘에 별이 떴습니다. 그것은 이 세계 누구라도 알 수 있는 것입니다. 여긴 어둠의 절기에 뜨는 구원의 별 외엔 별이 존재하지 않아요."
어지간한 일에는 놀라지도 않는 그가 어디서 날아온 것인지 알 수 없는 화살 하나에 기겁하고 말았다. 아무리 인생을 감흥 없이 살아도, 그가 살던 곳은 이렇게 느닷없이 생명의 위협을 받는 곳이 아니었기 때문에 놀랄 수밖에 없는 것이다.
"저들이 나를 없애면 어둠의 절기는 끝나지 않는 겁니까?"
그 존재는 희미하게 고개를 끄덕이고는 사방을 살피며 말했다.
"어둠의 절기는 이 세계의 계절이나 마찬가지죠. 되돌아오는 주기는 불규칙적이지만 꼭 찾아오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 절기를 무사히 넘기지 못하면 우린 어둠에 잠식되어 묻혀버리겠죠."
도통 이해할 수 없는 애기다. 그렇다면 여기 사람들은 자신의 힘으로도 어찌할 수 없는 멸망의 위기 속에서 살아간다는 것인가? 그것도 스스로 해결할 능력마저 없는데 그저 다른 누군가가 구원해주기만 기다리면서 말이다. 너무나 모순 덩어리인 이 세계가 치 떨리도록 무섭기까지 했다.
"여기에 있는 존재들은 자신의 바람과 상관없이 목숨의 위협을 받는 것이군요. 그렇다면 여기는 생명체가 살아가기 너무 힘든 곳 아닙니까?"
조물주가 마치 사람이 열악하고 지독한 환경에서 얼마나 어디까지 버틸 수 있는가를 한계선을 그어놓고 시험하는 것 같은 절망적이고 암울한 기분. 그때였다. 하늘에서 시커먼 화살의 비가 쏟아져 내린 것은.
쐐애애액-. 퍼억 퍽.
아슬아슬하게 스치고 지나가는 화살무더기들이 바닥으로 처박혔다. 그 힘이 얼마나 센지 바닥에 반 이상이나 박힌 화살들이 검게
빛나고 있었다.
"으아아악!"
별은 머리를 감싸 쥐고 바닥에 주저앉았다. 도무지 움직일 수가 없었다. 한 발만 내딛으면 눈 깜짝할 사이에 죽어버릴 것만 같았다.
이 망할 놈의 세계는 진짜 판타스틱해서 죽음의 위기조차 리얼한 꿈만 같다. 머리에서 쥐가 나는 듯이 아파온다. 차라리 꿈이었다면 즐기기라도 할 텐데.
"위험합니다! 움직여요 어서!!"
다급한 목소리와 함께 휙 자신을 잡아채는 존재. 자신의 허리에 팔을 감고는 순식간에 땅을 박찼다. 단단하게 끌어안긴 허리춤을 내려다보고 자신을 가볍게 옆구리에 끼고 날듯이 달려가는 존재를 바라보았다. 역시 선명하게 보이지 않았다. 별은 자기도 모르게 뒤를 돌아보았다. 그리고 자기가 있었던 곳이 나무가 울창한 숲길이었던 것과 자신의 뒤로 정체를 알 수 없는 그림자들이 휙휙 잔상을 남기며 쫓아오고 있다는 것도 알았다. 한 가지 더 알게 된 사실은 자신이 있었던 곳에 있던 나무들은 온통 새까맣게 벌집이 되어있다는 것이었다. 얼굴에서 핏기가 가시는 걸 느끼면서 별은 자신을 끼고 달리는 존재의 궁둥짝이라도 차주고 싶었다. 얼른 달려! 더 빨리 달리란 말이야 이 쓸모없는 것 같으니!! 라고 소리치며 채찍질이라도 해주고 싶은 심정이었다. 너무나 현실성 없는 현실에 점점 미쳐가는구나 라고 생각하는 별이었다. 뒤에서 휘익 휘익 바람을 가르는 소리와 아슬아슬하게 몸을 스쳐 지나가는 화살들과 정체를 알 수 없는 빛 무리. 이런 식으로 목숨을 위협받게 되다니 오히려 신기할 지경이었다. 자신을 안은 존재는 요리조리 잘도 피해가면서 날듯이 달렸다. 자신들이 땅을 디뎠던 곳은 여지없이 움푹움푹 파이거나 시커먼 화살더미로 변했다.
# by | 2011/02/21 22:51 | 밤에 관한 단문 | 트랙백



